[동물변인] 一番事件 : 발각(發覺)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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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외로 오래 걸리네.”

아픈 키레를 위해 죽을 쑤고 있는 나. 물론 만들 수 있는 죽이라고 하면 쌀과 물의 양을 1:6 정도로 맞춰서 마지막에 참기름을 조금 두르는 흰죽이 전부인데, 눌러붙지 않게끔 계속 젓는다는 행위가 상당히 품이 드는 요리였다.

마음 같아선 계란죽을 해주고 싶은데, 정확히 만드는 법을 모르기에 겁이 나서라도 시도할 수 없다. 만에 하나 계란이 덜 익기라도 해서 탈이라도 나면 아픈 몸에 치명상 아닌가?

그나저나 녀석에게 있어선 인간으로서─바퀴벌레였을 때도 경험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처음으로 접하는 뜨거운 요리다. 분명 겁도 없이 식히지도 않고 크게 벌린 입에 숟가락을 넣고 텁 하며 입을 닫겠지. 직후 뜨겁다면서 눈물 송글송글 맺힐 녀석의 모습을 떠올려보면…그거 재밌겠는데?

지금처럼 아프지만 않았어도 한 번쯤은 보고 싶은 광경이긴 하다.

죽이 눌어붙지 않게 계속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준다. 보통 이런 단순 작업중에는 영상이나 노래를 틀어놓고는 하지만, 외계인이라도 잡아다 만든 건지 고장날 줄을 모르는 구식 휴대폰과 구입 3년째에 전원이 나가버린 노트북으로는 불가능한 바람이다.

가스 타오르는 소리와 보글보글 죽 끓는 소리, 숨소리만이 백색소음처럼 들려오고, 뿌연 김과 함께 추위를 보다듬어주는 좋은 느낌의 온기가 피부에 스며든다. 부엌 바닥은 열선을 촘촘히 해두지 않은 건지 묘하게 쌀쌀한데, 아, 잠이 올 것만 같다.

…숨소리?

………………………………………어마마마?

“래문아, 뭐하니?”

“깜짝이야! 언제부터 계셨어요?”

“뭘 그렇게 놀라?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윽, 아버지와 함께 외출한다고 하시길래 늦게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오셨다.

“그래서, 뭐하니? 죽은 갑자기 왜?”

“제가 먹을 겁니다!!”

“얘는, 귀청 떨어지겠다. 속이 좋지 않은 거야?”

“예? 아, 네…….”

이거 난감하네. 죽을 끓이는 이유를 곧이곧대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키레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이상 내가 먹는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는데, 괜한 오해를 산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비켜보려무나. 이왕 죽을 하더라도 영양가 있는 걸 먹어야지.”

나를 뒤로 밀며 화구를 차지하신 어마마마는 “찹쌀이 없는 게 아쉽지만…”이라며 중얼거리시고는 불 세기를 약불로 낮추셨다. 냉장고에서 당근과 호박 등 야채들을 꺼내시고는 스텐 볼에 수돗물을 틀어두시는 어마마마.

“…안 가니? 나 때는 남자애가 이런 거 하는 게 아녔어.”

“언제 적 얘기를 하시는 건가요.”

재료로 보아 뻔히 야채죽이겠지만 만드시는 모습을 좀 더 보고 있으려니 축객령이 떨어졌다. 고작해야 죽 만들기에 비전의 레시피가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우리 집안 식탁은 대체로 어마마마의 손길이 닿아있기에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는 부끄러움도 아닐 것인데 대체 왜…….

이왕이면 내가 직접 죽을 끓여주는 것이 녀석과 좀 더 친밀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겠지만, 어마마마의 손에 맡겨진 이상 그저 맛있게 만들어지는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실 정도로 요리를 잘 하시는데다가 실수하신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니 안심할 수 있다.

“키레, 괜찮아?”

잠겨있던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간다. 문을 닫는 순간에 손잡이를 돌린 상태로 잠금 버튼을 눌러 소리를 죽였다. 평소에도 방문을 잠그고 있기에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잘못될 건 없지만,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눈길을 받는 걸 피하고 싶다.

“…….”

쌕쌕거리며 잠들어 있는 키레. 땀으로 젖어있는 머릿결이 함초롬하게 보이는 것은 본판이 받쳐주기 때문일까? 다만 녀석의 체온이 41도에 육박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미안한 마음에 다른 잡념은 조용히 사그라든다.

담요를 어깨 위까지 덮어준다. 땀이 난다는 것은 병균과 싸우고 있다는 증거. 깨끗한 물로 축여둔 천으로 키레의 입가를 적셔준다. 자는 동안에 물을 마실 순 없으니 땀으로 빠져나가는 수분은 이렇게 보충시킬 수밖에 없다.

입술을 적셔주었다면 다음으로 귀 뒤쪽을 가볍게 닦아내고, 목과 겨드랑이, 이어서 사타구니도 무념무상의 마음으로 닦아준다. 이렇게 여러 번의 신체 접촉이 이어졌음에도 많이 힘든 모양인지 눈을 뜰 생각을 않는 키레.

“…….”

축 늘어진 더듬이가 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불건전한 충동이 밀려든다. 역시, 건드려보고 싶단 말이지.

키레가 건들지 말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기도 했고, 혹여나 녀석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가 더듬이가 상처입진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그래도 만져보고 싶다.

꿀꺽.

슬그머니 손을 더듬이로 향한다. 아주 느릿하게, 잠자리 날개를 노리듯 조심스럽게, 호랑이가 먹잇감을 향해 다가가듯 조용하고도 부드러운 손놀림으로…찬찬히…….

“…………뮤앗!?”

“으아, 깜짝이야!”

놀랐잖아! 깜짝이야!! 아니, 어마마마께선 못 들으셨겠지!?

헉헉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날 노려보는 키레. 눈을 뜨기보다도 먼저 상체를 일으킨 걸로 보아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감지하고 반사적으로 반응한 모양이다. 이게 육감이라는 건가?

“…만지려 했지.”

“…….”

엄청난 박력으로 한 음절씩 끊어 말하는 키레. 그래도 모르는 척은 계속 해야 통하는 법이기에 나는 조용히…

“래문. 이거, 만지려고 했지.”

“아니, 그저 나는 네 앞머리가 눈을 찌를 것 같아서 옆으로 치워주려고 했던…….”

“만지려고 했지!”

야, 어마마마께서 듣겠다! 몸이 아프니까 위기 의식이 결여됐구나!?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것으로 보여지니, 이럴 땐 빠른 사과만이 답이겠다. 체내에 쌓인 열 배출을 위해 반라 상태로 둔 녀석을 어마마마에게 보여진다면 어떤 대화 흐름으로 이어질지 상상하고 싶지 않으니까!

“미안, 잘못했어. 하지만 만져보고 싶었다, 아주 많이. 그러니까 사과할게. 하지만 어마마마께서 말하면 걸려. 그러니 한 번 안 돼, 만지게 하면?”

“안…돼? 뭐라고 한 거야…?”

아차차, 마음 없는 사과에 말이 꼬인 건 차치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힘들어하는 녀석을 데리고 이 이상 장난치면 안되겠다.

등에 손을 대어 키레를 천천히 눕힌다. 나를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보는 녀석. 그러더니 이내 또 인상을 찌푸렸다. 아, 왜.

“아앗. 그렇게 넘어가려고!”

“에휴. 야, 조용히 좀 해라. 어마마마께 걸리면 난 둘째 치더라도 네 거처에 문제가 생긴다니까?”

“…흥. 얄미워.”

욕은 욕대로 해도 잠시간 쌀쌀한 공기를 맛보더니 자연스러운 본능에 따라 얼굴의 절반까지 담요를 끌어올리는 키레. 나는 그저 웃으며 그 앞머리를 헤집어놓았다.

“뮤으…그러지 말라니까…….”

칭얼거리는 키레. 그러나 방금처럼 짜증 섞인 칭얼거림은 아니다.

“…래문이 핑핑 돌아.”

“내가 아니라 네 눈이 돌고 있는 거야.”

내 말에 눈을 크게 뜬 녀석은 연신 깜빡거리며 눈이 돌아가지 않도록 힘을 주는 듯한 모습이다. 하핫, 녀석. 재밌어라.

“…하하.”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푸르른 하늘, 강렬한 햇살이 유리창에 부딪치고 쪼개져서 내 눈을 자극한다. 대상 없는 무모한 눈싸움을 그만두고 다시 키레를 쳐다봤다. 본 정체는 바퀴벌레인, 지금은 가녀린 모습을 한 여자아이, 키레.

내 두 발을 본다. 미쳐돌아가는 내 세상을 한층 더 비현실적으로 만들어놓은 장본인…은 나구나.

말을 정정하자. 그 장본인에게 이상 현상을 일으킬 수 있도록 결정적 역할을 한 발들. 이것들이 있었기에 키레와 만날 수 있었다.

혼자 궁상을 떠는 것보다는 둘이서 상념을 나누는 것이 덜 외롭다. 유독 형제자매가 많았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외동아들이었기에, 가족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친구들을 보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부모님께도 쉬이 터놓기 힘든 자신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친구들과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부의 감정을 털어놓을 곳이 없고, 갈 곳 없는 감정은 가슴 속에서 끊임없이 꺼졌다 타오르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러니, 이곳에 와서 키레와 만날 수 있던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이별, 갑작스러운 이사, 친구들과의 헤어짐. 내가 부의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던 것은 키레가 내 곁에 있어줬기 때문이니까.

본질적인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해결될 일 없이 내성발톱처럼 안으로 파고드는 방향성을 외부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이토록 가벼워졌다.

“고마워, 키레.”

“응…?”

그리고, 미안하다. 몇 번이고 떠오르는 미안하다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옷을 입혔어야 했는데,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이렇게 아프게 만든 것이 미안하다.

“래문, 난 괜찮아. 나가보고 싶다 한 건 나인데 왜 래문이 미안한 표정 지어? 옷, 래문이 입으라고 해도 안 입은 거 나잖아. 조금 힘들긴 하지만 금방 괜찮아질 거고. 나, 바퀴벌레니까. 래문이 말한 것처럼 나 강하니까.”

“…고마워.”

그렇게 말해주는 것도 고맙고, 원치 않게 인간이 되었는데도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고마워. 이게, 뭐라고 이게 울컥하네. 햇살을 너무 많이 쬐었나, 아무래도 안구에 화상이라도 입은 모양이다.

“편히 쉬고 있어. 아플 땐 누워서 가만히 쉬는 게 약이니까. 아, 밥도 가져다줄게. 아마 어제 내가 가져다준 밥보다는 맛있을 거야.”

“응…….”

작게 답을 돌려주곤 다시 눈을 감는 키레. 그 호흡은 조금씩 긴 간격으로, 그리고 규칙적으로 변해갔다.

편히 잠에 든 모습을 잠시간 보다가 혹여나 자는데 방해될까 걱정되어 침대에서 내려와 프레임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오늘 밤중으로는 완쾌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원래 바퀴벌레였던 애한테 먹여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열제도 먹여둔 상태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동시에 바퀴벌레로서의 특징도 나타나기에 여러모로 걱정되지만…완전한 미지의 영역이기에 그저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바퀴벌레의 생명력이면 괜찮지 않을까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어도 살충제에 절여지면 죽어버리는 것도 사실이다. 만사에 무적인 건 아니니까 마냥 안심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하다.

똑똑.

“래문아, 나와라. 죽 다 됐다.”

마침 죽을 다 끓였다며 문을 두드리시는 어마마마. 혹여나 침대에 누워있는 키레를 보여질까 걱정되어 의자를 끌어다 키레의 머리를 가리곤 이불을 적당히 말아올려 굴곡이 드러나는 것을 최대한 숨겼다. 오히려 더 수상쩍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내 한계이니 어쩔 수 없다.

설령 어마마마에게 걸릴 위험이 있다곤 해도 자고 있는 애를 말도 없이 바퀴벌레로 돌려놓는 것은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 바퀴벌레로 변하는 순간 잠에서 깰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지금의 고통이 바퀴벌레의 모습에서는 어떻게 이어질지도 모르니까.

앞으로도 키레와 함께하고자 한다면 알아가야 할 게 태산이구나.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함께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죽, 기껏 쒀왔는데 왜 먹질 못하니.”

살아있는 녀석에게 갑자기 떠오른 몹쓸 말을 지껄이곤 부엌으로 향한다. 물론 방문을 잠그는 것은─설령 어마마마에게도 열쇠가 있다곤 해도─잊지 않았다.

과연 어마마마라며 칭송할 부분일까,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맡아지는 고소한 참기름 향과 함께 볶을수록 강해지는 야채 고유의 은근한 풋내 속 달달한 향이 입맛을 돋운다.

냄새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데, 이거라면 몸져누운 녀석의 입에도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장사라도 할 거니?”

요리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쉬고 계시던 어마마마에게 평소처럼 식혀 먹겠다는 핑계를 대고 한 그릇 가득히 퍼담자마자 한소리 들었다. 시중에서 파는 양만큼 퍼담았다고 생각했는데…아, 그래서인가?

“아까 잠깐 밖에 나갔다 왔더니 배가 고파와서요.”

대화가 이어지면 어마마마가 무언가 눈치 채실지도 모르기에 웃는 표정으로 부엌을 빠져나온 나는 서둘러 방안으로 도망쳐 들어간 뒤 문을 잠그고 나서야 안도했다.

사실 이렇게 도망치듯 부엌을 빠져나오는 행동이야 말로 의심을 산다는 걸 인지하고는 있지만 각인된 공포라고 해야하나, 어마마마의 앞에만 서면 이성적인 판단력이 흐려지고 만다. 딱히 체벌을 받은 기억은 없는데 이상하단 말이야.

과연, 고소한 죽 냄새를 맡더니 언제 아팠냐는 듯 몸을 일으킨 키레. 내게 그릇을 건네받자마자 뜨거운 것도 잊고 순식간에 내용물을 싹싹 비우더니 다시 잠에 빠졌다.

어마마마에게 의심을 살까봐 내 몫을 포함해 한 그릇에 가득히 담았던 건데, 음, 의도치 않게 한 끼를 굶게 됐네.

“…맛있다.”

그릇에 남은 흔적을 손가락으로 살짝 훑어 맛을 보고는 주린 배의 고동으로 한숨을 대신한다. 갑작스럽게 이것저것 신경 쓸게 생겨서 그런지 궁상을 떨 기운도 없다.

그러니 맨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면, 얼른 키레의 건강이 좋아지길 기원하며…….


흐름상 한 번 자를 필요성이 있어 평소의 절반 분량으로 작성했습니다.

마지막 몇 줄은 과거에 작성했던 내용을 수정함에 따라 끊기 애매한 지점이 되어 추가해본 건데, 아, 괜히 추가했나 싶은 후회가 스물스물 올라오는데요.

좀 더 길게 작성하고자 하였으나, 해당 파트를 넘어가야 본격적으로 래문 주변의 대화 가능한 인간을 늘릴 수 있기에 어정쩡하게나마 잘라버렸습니다.

기존에도 키레의 이야기를 마치는 데에만 상당한 내용이 들어갔는데, 자꾸 분량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은 책 한 권 분량이 나올까 두려워지고 있거든요.

물론 등장인물의 수가 극단적으로 적은 소설을 적어보지 않은 건 아닌데, 그럴수록 인물의 사고 중심으로 묘사가 진행되니까 이야기 전개가 극단적으로 늘어져서 피하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뭐, 이번 편의 후반부는 추후 가필이 들어갈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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