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다양한 신비가 있다며, 창작물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이야기를 많이 접해본 바 있다. 마법이나 비현실적인 괴물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현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허구성이 강한 이야기도 많이 읽어봤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그런 속담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단박에 쫄딱 망해버렸다는 이야기는 분명 비현실적인 상황에 속할 것이다.
물론 수중에 현금이 없다면 딱히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아니지만 말이다.
“…….”
“…….”
“…….”
가족 모두가 아무런 말도 없다. 유구무언. 나올 말이 있을 리도 없다. 보유한 회사 지분은 물론이요 서울 강남에 보유하고 있던 자택마저 내다 팔고 남은 돈으로 사회로부터 도망치듯 지방으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니까. 그 남았다는 돈이 온전히 부모님의 손에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기에 지금의 상황에 당도해 있는 것이겠다.
냉랭한 분위기가 흐른다는 게 아니다. 공기 분자마저 활기를 잃고 심해 깊은 곳으로 가라앉은 것만 같은 묵직한 중압감이 드좁은 차안에 자리잡았을 뿐이다. 봄의 도래는 때에 맞춰 오겠다는 듯 이곳은 아직도 한겨울의 동토 그 중심지이다.
덜커덩. 어쩌면 그 중압감은 물리적으로 고통을 안겨오는 수많은 짐 상자들로 인한 걸지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재산 중에도 직접 운반해야 할 귀중품이 짐칸에 더불어 사람이 타고갈 뒷자석마저 차지하고 있으니까.
내 안락함과 평안함을 위협하는 상자들은 비포장도로에 들어서며 더욱 미쳐 날뛰고 있다. 갑작스레 미쳐돌아가는 주변 환경이 내 심상마저 어지럽힌다.
이 복잡한 심경에는 친구들과 제대로 된 이별을 못했다는 점도 한몫 한다. 대체 일이 어떻게 꼬였길래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조차 없이 이런 시골 구석으로 도피해와야 한단 말인가? 쓸데없이 튼튼하게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인 매듭은 알렉산더인지 알렉산드로스인지가 와도 끊어놓을 수 없을 만큼 골치 아픈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쿵!
“컥!”
덜컹거리며 부딪친 머리보다 수축된 목 근육을 타고 흐르는 둔통이 더 기분 나쁘다. 그 틈새를 노리고 볼따구를 찔러 들어오는 상자 모서리를 어떻게든 붙들어 막았지만, 이미 사후약방문이고!
“안전 운전 좀 해주시겠어요?”
참다 못해 입을 열었다. 아니, 이중에서 제일 죄 없는 사람은 나 아니야? 돈을 낭비하기라도 했어, 돈을 헛되이 까먹기라도 했어? 아직 보호받아야 할 미성년자로서 할 말은 해야지!
“야, 이 망할 놈의 자식아. 네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게 잘못 아니겠냐?”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돌아오는 걸걸한 욕설. 그걸 듣고 가만히 있을쏘냐?
“안전벨트를 맬 수도 없을 만큼 상자를 쌓아놓은 건 제가 아닌데요. 백미러로 뒤를 볼 수도 없게 불법 적재를 해두신 분의 잘못 아닌가요?”
“허허, 길가에 던져놓고 가도 모자를 망할 놈일세.”
“그거 아동 유기에 해당하는 건 아세요?”
“아동은 무슨! 자기 애비에게 큰소리 땅땅 치는 머리 큰 놈밖에 없구만! 바다에 던져놓으면 입만 둥둥 떠다니겠어!”
덜컹!
“윽!”
“그만. 래문, 네 아버지가 운전하고 있는 게 보이지 않니?”
조수석에서 창밖을 보고 있던 어마마마─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언젠가 설명할 날이 올 것이다. 아니면 말고─의 꾸중을 듣고 말았지만 내 입은 아직 뚫려있다. 할 말도 많다.
“……네.”
“어허, 이 녀석이…하늘보다도 높은 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데 반응이 그게 뭐냐!”
“보이지 않습니다!!!!!!!!”
“이, 이 자식이…?!”
이미 한바탕 울분의 열기로 타오르고 남은 감정의 잔해에 못 다 꺼진 불씨가 붙어있는 나로선 가연물만 지급해준다면야 몇 번이고 타오를 수 있다. 연소의 3요소에 따르면 내 숨이 붙어있는 한 이 불이 꺼질 일은 없을 거다!
“자식의 잘 되어가던 연애 사업에 물을 끼얹으시고, 심지어 이런 촌구석으로 이사오게 되었는데, 제가 미쳐 돌지 않는 게 다행이지 않나요?”
“부모에게 하는 말 꼬락서니를 보건대 이미 미쳐 돌아있는 것으로 보인다만.”
“미친놈을 알아보는 건 미친놈 뿐이라던데, 그거 참 황송하옵니다!”
“너, 너 인마. 자식 된 녀석이 부모에게 그러는 건 도리가……!”
“그만!!”
덜컹!
아버지와의 열띤 논검(!)을 끊은 건 어마마마의 불호령.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단단해지고 있는 대뇌피질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충격이었다.
아직 헛소리할 여유가 있는 걸 보니 눈앞이 번쩍거릴 정도였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아니면 그건가?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로 통각이 마비되었다 같은?
“…….”
“…….”
“…….”
덜컹! 쿵!! 덜컹!!! 쿵!!!!
아!! 도저히 못 참겠다!!!
“인간적인 도리로 안전벨트는 맬 수 있게 해달라고요!”
“인간 된 놈이 아닌 것 같은데 안전벨트가 뭔 소용이냐? 거기 있는 책이나 조용히 읽으면서 가라.”
“제 나이가 몇인데 언제 적 깨진 달걀의 모험을…아니, 이건 또 어디서 찾아내신 거예요? 그보다 이걸 왜 여기 두었는데요?”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으란 얘기다.”
“지금 제 머리가 깨져서 교양이 새어나가게 생겼는데……!”
“모두 그만!!”
덜컹!!! 쿵!!!
“…….”
“…….”
“…….”
다시 차 안은 정적으로 돌아갔다. 자동차의 바퀴도, 내 인생의 톱니바퀴도 아주 요란하게 돌아가는구나. 내 팔자야.
한 14년 전일까요? 중고등학생 시절에 모 플랫폼에서 연재했던 소설을 기어코 다시 써보려 합니다.
딱히 누가 읽어주길 바라서는 아니고, 당시 연재 중단은 없을 거라고 말해놓고는 외장하드가 터져 구상해둔 모든 소설 설정이며 특별편(외전)이며 죄다 날아가버렸던 충격에 오랜 시간 절필 상태였던 게 분해서 그렇습니다.
이후로 작성한 소설들은 1권분량씩은 꾸역꾸역 채웠으나, 공개하기엔 너무 수정할 점이 계속 보여 수정하다 못해 또 손을 떼기를 몇 년…
다시금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는 요즘, 재차 글쓰기를 시작해봅니다. 동물변인은 당시에도 초등학생 시절 떠올렸던 소설의 리메이크 격이었고, 딱히 처음 써본 소설도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작품인 만큼 그대로 놓아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당시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지금의 저를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 실험적으로 써보려 합니다. 나중에 써먹고자 소설 속에 녹여냈던 수많은 복선이며 설정들을 다시금 읽어가며 주워담아야 한다는 고통이 수반되겠지만, 당시의 저를 찾아가는 느낌으로 즐겨보려 합니다.
이참에 작성했던 여러 소설들을 조금씩 풀어보면 좋겠네요.
TMI일수도 있지만, 당초 동물변인의 프롤로그는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게 더 유의미한 시작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당시 선택이 정확했던 것 같습니다.
일인칭으로 인물의 감정을 깊고 자세하게 묘사하길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글을 쓰다 보면 거기에 매몰되고 마는 경우가 태반이거든요. 결국 요번 프롤로그도 그렇게 흘러갈 뻔했지만, 어떻게든 자제할 수 있었습니다.
자제한 게 요만큼이냐 하면…할말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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