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변인] 一番變人 : 바퀴벌레(蜚)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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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하느님. 당신은 왜 그렇게 높은 곳에 계신가요? 그 자리에서 웃고 있지만 말고 주먹다짐 한번 하지 않으시렵니까?

하하, 정말이지, 헛웃음만이 나온다. 세상에나, 도시에서 살던 도시 촌놈이 진짜 이런 깡촌으로 와서 살게 될 줄이야 생각이나 해봤겠는가?

그 이유도 자못 화려하다. 추가 수식이 불필요하게 파산이라는 두 글자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아버지가 회장으로서 있던 이성기업, 이성그룹이라 하면 문어발식 사업으로 유명했다. 나름 세계 각국에 법인을 두고 글로벌 대기업이 되기 직전…그런 회사였는데…….

낙화였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낙화. 종자를 퍼트리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필수 과정.

애초에 종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영양분이 충분해야 한다. 여기서 모든 영양분(돈)을 잃어버린다면 다른 이들의 거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 그것이 이성그룹의 말로였다.

아아, 내 이름은 신 래문. 한 달도 안 되는 겨울방학이 끝나면 고등학교 2학년이 될 예정이던 건강한 소년이다.

특수 목적 고등학교를 다니며 확실한 미래를 설계하던 도중, 그 꿈이 격추당한 비운의 학생이기도 하다.

“후, 후후후. 이 정도로 포기하는 건 절대로 도리가 아냐.”

갑작스럽게 이사가 결정되었을 때부터 혼란스러운 마음은 지금까지도 진정시키기가 어렵다. 며칠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어느 정도 안정이 찾아왔지만, 솔직히 부모님으로부터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며 일방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엔 체면이고 예의고 뭐고 죄다 던져버리고 깽판을 부렸을 정도로 충격이 컸으니 말이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창밖을 쭉 내다봤지만, 집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밭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겨울의 한기에 모습을 감춘 것인지, 노랗게 시든 풀마저 보이지 않는 맨땅만이 그저 넓게 넓게 놀아나고 있을 뿐이다.

오래 전 모 초콜릿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서 볼 수 있던 공터의 유일한 집 한 채의 이미지를 떠올려본다면 이곳이 어떤 느낌인지 쉽게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벽돌로 된 한옥 구조라는 기이한 양식의 집은 총 네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은 내 방과 부모님의 방, 창고와 부엌으로 배정되어 있다. 아, 일단은 욕조가 딸린 화장실도 있긴 한데, 화장실까지 방으로 치고 싶지는 않았다.

화장실을 제외하고 각 방들은 최소 10평씩은 되는 듯하며, 방 외부로는 일단 마루도 존재한다. 나무 재질에 니스 칠까지 완료한 엄연한 마루다. 종류로는 툇마루라 해야할지 대청마루라 해야할지, 둘 다라 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아파트보다는 좁은 공간이지만 개성만큼은 넘치는 집이라 할 수 있겠다.

똑똑똑.

…아, 문 두드리는 소리. 분명 어마마마─어머니─일 것이다. 잠금버튼을 누르지 않았기에 문을 두들기자마자 안쪽으로 활짝 열리는 문짝 뒤로 아니나 다를까, 어마마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래문, 이제 제정신이 드니?”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혼자 있는 성찰의 시간은 여러 의미로 효과적이면서, 괴롭네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능청스레 답했다.

나의 어머니, 신 여사. 어차피 누가 보더라도 성함을 딱 말하는 사람은 없다. 부르더라도 여사님이라고 하지, 절대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언젠가 설명할 날이 오겠지.

참고로 어머니의 신(申)씨 성은 내가 따라간 아버지의 성인 신(愼)씨와 다른 성 씨이다.

마흔셋이라는 춘추─난 어디까지나 예를 담아 하는 표현이다. 절대로 어마마마가 나이를 적잖이 잡수셨다며 놀리는 게 아니다. 내 양심에 손을 얹지는 않겠다.─에도 불구하고 꽤나…사실은 무척 젊어 보이신다.

정말, 아무리 봐도 3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떤 사술을 부린 걸까? 예전 사진을 보면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변해가는 가운데 어마마마만 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뭘 그런 눈으로 쳐다보니?”

“아뇨, 정말 어쩌면 그렇게나 변화가 없으실 수 있는가 감탄하고 있었죠.”

“누구 덕분에 주름살 생긴 건 보이지 않고?”

“아, 하하하. 꼬집어 말씀하지 않으셔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려 했어요. 그만 화를 푸시죠, 어마마마.”

“말은 잘해요.”

어마마마! 이 이상 존경의 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절대로 이건 조롱의 의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시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도 아니다.

정말 순수하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부르는 어마마마라는 호칭. 내 이 나이가 되도록 어마마마에게 대들어본 경험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 아무렴 그만큼 이해심도 많으시고 훈육도 제때 하실 줄 아는 좋은 분이다.

요 며칠 개기고 있던 건 물리적 심리적 충격이 양측으로 찾아온 덕에 잠시 미쳐있었기 때문이니까 그게 평소 모습이라며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흠…네 두 눈에 이유 모를 흠모의 기가 어리는구나. 아니면 무언가를 바라고 있어.”

“아, 으음.”

역시나 정확하게 심리를 짚어내시는 어마마마. 흠모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까운 생각을 하긴 했지. 여기에 무언가를 바라고 있느냐는 말에는……아!

생각해보니 내게는 어마마마에게 단 한 번이지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언젠가 써먹어야지 생각하고 묻어두었던 기억이 이 순간 되살아날 줄이야.

뒤적뒤적.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살아있는 약속 불이행의 증거 중 하나인 구식 폴더형 휴대폰. 슬라이드폰이 한창 유행일 때 바꿔주기로 약속을 했음에도 스마트폰이 유행하는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은 유물이다.

그만큼 내가 아껴 사용하기도 했고, 쓸데없이 내구성이 좋기도 했지만.

“응? 휴대폰은 왜 꺼내드니?”

“어마마마께서 어림짐작으로 이끌어낸 행위를 위해 증거자료를 제시하기 위함이옵니다.”

“얘가 아직도 멀미를 하나, 왜 이리 혀가 술술 풀려?”

어마마마의 위명을 뛰어넘기엔 아직 제 궤변의 도가 짧습니다만.

음, 그러니까…메뉴를 열고, 메모함에서 음성메모 폴더에 들어가서…아, 이거다, ‘X-파일’!

후후후.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 듯 짐짓 장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내 자신만만한 미소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으신 어마마마.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오ㅃ─.]

삑, 삑, 삑, 삑!!!!

아냐!! 이걸 재생하려 했던 것이 아니야!! 흥분한 나머지 방향키를 한 번 더 눌렀던가!?

급하게 취소 버튼을 난타하고 슬쩍 시선만 위로 들어보니, 어마마마의 따가운 눈초리가 내 휴대폰에 꽂혀있다.

“오호, 래문? 방금 그거, 다시 틀어보지 않겠니?”

“절대로 한사코 거절하겠습니다. 아무튼 그건 실수였으니까 관용으로 넘어가주십사, 이번 것을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방금과 같은 실수는 다시는 하지 않는다. 이번에야 말로 내가 실행시키고자 했던 음성 녹음파일을 실행시켰다.

[좋아. 만약 래문이 네가 특목고라 불리는 곳에 수석 입학을 성공한다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한 가지를 들어주도록 할게. 단, 당연한 말이지만 금전적인 한계는 있을 것이고 사회적 허용 내에서 바라야 할 거야. 분에 넘치는 금액을 달라든가 여자친구를 데려와 같이 살게 해달라든가 하는 건 절대로 안 된다는 소리다.]

삑! 탁!

휴대폰을 접었다. 이것으로 어마마마께서는 아무 말도 하실 수 없을 거다. 당신이 약조하신 것이니 ‘조건이 갖추어진 확실한 물증’에 이견을 내실 수 있을 리가 없겠지.

잠시 고개를 창밖으로 향하시는 어마마마. 그러더니 마치 자식에게 ‘분가하겠습니다’같은 말을 들은 듯한 부모의 허탈함 가득한 목소리로,

“…그래, 그래서 무얼 바라니?”

당신의 패배를 인정하셨다.

여기서 ‘죄송합니다, 제가 바보였어요, 어머니!’라는 아들과 ‘그래, 이해해줘서 고맙구나, 내 사랑하는 아들아!’라는 어머니의 대화가 이어지며 긴 시간의 포옹을 하는 아름다운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나와 어마마마의 대화는 그런 신파극과는 궤가 좀…아니, 아주 많이 다르니까.

모자가 서로 ‘낫은 낫이고 기역은 기역이다’라는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기에, 언제나 둘의 대화는 기세에서 밀리면 지는 줄다리기처럼 이어진다. 단 한 번의 말실수가 그때의 대화에서 이길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건 무리라고 하지 않았니?”

아……. 방금까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어마마마의 표정이 굳었다. 나의 철딱서니 없는 한마디 때문이 분명하다.

아니, 알고 있지.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무리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도…이 마음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마지막으로 한번은 물어보고 싶었다.

“이런 집을 구할 정도였으면 적당히 그곳에서도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체념은 했지만 미련만큼은 버리지 못하고 입밖으로 흘러나온다. 이왕 실수하는 김에, 답답한 심정에 앞으로 말해볼 기회가 없을 한마디를 토해냈다.

그러자 어마마마는 한숨을 내쉬며,

“다 망한 집에 무언들 없겠니. 바라는 건 없고, 필요한 것들만 있단다. 그래도 부잣집이라 불렸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기렴. 망해도 삼년은 가잖니?”

어마마마께서는 그 말만을 남기고 문의 잠금 버튼을 누르셨다.

똥~하는 스프링 소리와 함께 닫히는 문…은, 무언가 하실 말씀이 남아있었는지 좁은 틈을 통해 나를 바라보신다.

“잠깐 네 아버지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고 올 터이니…우리 방에는 들어오지 말거라. 훔쳐갈 것도 없을 뿐더러 일종의 사생활 침해이니 말이다. 네 시간 전후로 하여 들어올 테니 헛짓만이라도 하지 마렴. 쓰잘데없이 집밖을 종횡무진하다 코 깨지진 말고.”

“전무후무한 일로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나의 대답에 짖궃은 표정으로 미소를 씩 지어보이시더니 이번에야 말로 문을 닫고 나가셨다.

어마마마도 그렇지만 아버지도 이사와 더불어 여기까지 운전해 오는 데에 큰 피로감을 느끼고 계실 텐데, 네 시간씩이나 마실을 나가시는 거라면 도중에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 조금 걱정된다.

워낙 평소부터 건강 관리를 잘 해오신 분들이니 만큼 별 일 없을 거라 굳게 믿고 있지만 말이다.

…음, 어쩐지 무언가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착각인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머리를 식힐 겸 방에 들어와 줄곧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모처럼이니 방 구석구석을 둘러봐야지. 아직 옷가지며 각종 물건들이 창고 안 상자 안에 잠들어 있지만, 침상 등 큰 가구들은 자리잡고 있으니까.

문을 열면 정면으로 1~2m 정도 거리를 두고 책상과 책장이 놓여있는 구조. 그 옆으로 시선을 살짝 옮긴다면 곧장 가로로 길게 난 창문이 있고, 창문을 쭉 따라가 책상이 놓인 벽의 맞은편을 보게 되면 옷장과 침대가 있다. 나름 동쪽을 향해 베개가 단정하게 놓여있고, 이불도 가지런히 펼쳐져 있다.

책상 옆 책장에는 이사 전 배치 그대로 책들이 가득히 꽂혀 있는데, 내 방과 부모님의 방만큼은 직접 짐을 정리하겠다고 말해두었기에 이는 분명 어마마마께서 세심히 정돈해주신 것이겠다.

“…감사하네.”

바닥에 뻗어있을 게 아니라 방 안을 제대로 둘러보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려둘 걸. 이미 사라진 어마마마에게 뒤늦은 감사를 표해보지만, 본인은 이 자리에 없다. 나중 가서 감사 인사를 전하기엔 부끄러워서 입이 열리지 않을 것 같은데.

…자, 이처럼 설명할 것이 많지 않다. 이게 당장 내 방에 있는 물건의 전부니까. 그러고 보니 벽걸이 에어컨이 아직 설치되지 않았네. 설마 한국의 여름을 에어컨 없이 보내라고 하시진 않겠지?

“…할 게 없네.”

아무것도 할 만한 것이 없다. 만약 학생의 본분을 다하라며 공부나 하라는 말을 한다면, 나에게는 모욕이고, 모독이다. 방학에 쉬고 있는─그것도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 요양중인!─학생에게 그런 끔찍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바라는 바대로 한가득 문제더미를 던져주마.

최소한 나는 공부를 솔선해서 즐겨하는 학생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지루한 시간을 어찌 보내면 좋을까? 휴대폰에 있는 기본 게임들은 이미 클리어한 지 오래이고, 내 개인 노트북은 아직 창고 안 이사박스 어딘가에 들어있을 것이다.

“그래, 결심했어! 침대에 누워서 쉬어야지!”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킬링타임이라곤 수면밖에 없구나! 아무렴, 수면만큼 훌륭한 일상 행위도 없지! 사람의 에너지를 재충전시켜주는 것과 동시에 시간의 수직선상에 있어 아무런 무료함 없이 한참 우측으로 치우친 곳까지 보내주는 일이 가능하니까!

물론 그만큼 제정신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수명이 깎이는 게 흠이지만, 솔직히 난 지금도 제정신이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가슴이 답답하구나~

자, 그럼 침대 위로 올라서볼까? 침대 위에서 콩콩 뛰는 행위가 갑자기 하고 싶어졌다. 사람이 지치면 동심으로 돌아가려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동작한다더니, 지금 내 꼴이 그런 것 아닐까?

자, 왼발을 올리고 다음으로 오른 발을…….

“…….”

“…….”

─이 상황을 본, 아마 미래에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마라. 별 것 아니라며, 언제 어디서든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며 마음을 굳건히 먹으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니야. 미안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사과할게요. 사죄하게 해주세요. 아아, 미안하다, 미래의 나. 아니야, 누구에게 미안한 건지 모르겠는─끼야악 바퀴야!!!

바퀴. 바퀴야! 정겨운 국어로 바퀴벌레야! 영어로는 Cockroach라 쓰는 바퀴, 바퀴벌레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바퀴, 바퀴벌레야! 내 발 위로 겁도 없이 올라타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것은 바로 바퀴, 바퀴벌레야!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윤기가 흐르는 등껍질을 가진 통통한 바퀴, 바퀴벌레야! 두 더듬이가 슬슬 살갗을 간질여서 등골 오싹하게 만들고 두 다리가 후덜덜 떨리게 만드는 바퀴, 바퀴벌레야!

더럽고 습한 곳에 살아가는 바퀴, 바퀴벌레야! 혐오하는 바퀴, 바퀴, 바퀴벌레야! 조우하면 약을 뿌리는 게 통상적인 관례인 바퀴벌레야!!

아, 근데 주변에 살충제가 없잖아.

아아, 눈이 핑핑 돈다. 바퀴, 벌레가 내 발 위에─

─올라탔구나?

“바퀴햐악!?”

으아악!! 바퀴가, 바퀴벌레가 내 발 위에 올라왔어!! 내 발 위에!!! 더러워, 끔찍해, 간지러워, 불쾌해!! 정말 불쾌해!!!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떨어지라고! 그렇게 내 다리를 타고 올라가려는 듯한 행동은 하지 말고, 떨어져!! 그렇게 위로 도망치려 해봤자 어차피 내 신체 위라는 건 변하지 않잖아! 정말 도망치고 싶으면 내 몸에서 떨어지란 말이야! 이렇게 다리를 털어대는데 얌전히 떨어지란 말─

“─야?”

어어, 갑자기 세상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천장이 나와 수평으로 마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발바닥에는 기묘한 느낌만이 전해져서, 정신을 차려보니 허공에 떠있는 것같은 착각마저 들고.

“어…?”

─착각이 아니다. 확실하게 지면과 수평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불안정한 자세로 떨어지면 낙법이고 뭐고 할 수가 없는데, 뒤통수부터 박으면 진짜 골로 갈지도 모르는 일인데!

“……!”

근데 발뒤꿈치에 아직도 바퀴가 붙어 있잖아? 지금 머릿속으로 생각이 뺑뺑 돌고 있긴 한데 실제론 몸을 털끝만큼도 움직일 수 없으니까…이대로 밟는 수밖에 없는 거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싫어! 그건 내가 죽기보다 더 싫어!! 그냥 죽는 게 낫지 바퀴벌레를 짓이기면서 죽는 건 더 싫어!!!

“……!!”

중력에 이끌리는 몸뚱이가 내 초인적인 의사를 거부한 채 그대로 낙하한다. 하필이면 뒤통수를 앞세워 떨어지기 때문에 일종의 체념까지도 느끼고 있다.

아, 이거 진짜 재수없으면 나 죽겠구나. 세상이 느리게 보이는 데엔 이유가 있는 것이겠다. 어쩌면 이조차도 주마등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었는데, 바퀴벌레가 모든 것을 가려버렸어!

쿵!

─아, 소리가 들렸다. 둔탁하게 단단한 무언가에 닿아 울리는 소리가.

발뒤꿈치가 찜찜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눈앞이 너무나도 환하게 밝은 것이 기분 나쁠 정도로, 끔찍할 정도의 두려움이 밀려든다. 검은 어둠보다도 더욱 기분 나쁜 하얀 밝음이 내 시야를 가득히 메웠다.

진짜 이대로 죽는 건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서서히 느려진, 다. 이런 최악, 의 죽음이라니. 어라, 근데 이런, 걸로 정말 죽, 는 건가?

점차 예의, 하얀 빛, 이 검은, 것과 섞, 여간, 다.

그리, 고, 생각, 도…점차, 떠, 오…는……없…….


예전에 작성했던 내용을 많이 사용했다고는 하나, 어언 두 시간은 걸린 것 같네요. 기존 플랫폼에 작성했을 당시엔 한 편당 10kb를 목표로 작성했기에 굳이 두 편으로 나누어 연재했는데, 여기선 딱히 편당 분량을 나눌 필요는 없어 하나로 합쳤습니다. 대략 18kb 분량입니다.

전에는 좀 더 희극성 표현방식을 사용했는데, 지금 나이에 그렇게 표현하자니 묘한 괴리감이 느껴져서 지금의 글쓰기 방식대로 작성했습니다. 이야, 나이를 먹음에 따라 동심을 표현하기 어려워진다더니, 제가 그 꼴이군요.

어떻게든 어릴 적의 사고와 상상과 기억을 되풀이해 유지해가며 제 이해의 스펙트럼을 늘여놓고 있었건만, 장력이 다한 고무줄마냥 헐렁해지고 느슨해지는 건 별 수 없는 노릇인 듯합니다.

참고로 동물변인의 아이디어는 제가 벌레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본 꿈속의 이야기가 소설로 이어진 셈인데, 생각해보면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점차 공포심이 예전만하진 않게 된 것 같네요.

지금도 아주 경기를 일으키지만, 적어도 맞서 싸워볼 정도의 담력은 생긴 것 같습니다. 일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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