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변인] 一番變人 : 바퀴벌레(蜚)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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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는지 눈초리가 날카로워진 녀석.

“네가 바퀴벌레였다는 사실을 납득하기로 했으니까 그렇게까지 더듬이를 지키며 경계하지 않아도 돼.”

자, 이러한 상황에 대화를 용이하게 진전시키고자 한다면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으레 갖추는 예절 의식이 있지.

“저기, 네 이름이 뭔지 알려줄 수 있을까? 계속 야, 너, 바퀴, 이렇게 부르는 건 너도 불편하잖아.”

솔직히 내가 더 불편하다. 좋아하지도 않는 벌레의 이름을 연호하는 것도 그렇고, 계속 머릿속에서 작고 검고 징그러운 모습이 연상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거든.

“내게 이름 있을 거 같아?”

어이없다는 듯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나와 대화를 잘 하고 있는 걸 보면─갑작스러운 변화였긴 했으나─바퀴벌레였을 때 쌓은 기억이나 지식이 어느 수준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이름은 없다고 하니 그건 또 새롭다.

“그럼 너네는 서로를 구분하지 않는 거야?”

“이름 없어도 구분 가능해.”

바퀴벌레들은 서로를 냄새로 구별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다만 살아감에 있어 암수라는 성별 차이를 제외하면 각자를 특정할 필요가 없으니 이름의 개념도 따로 필요없는 것이겠다.

“…난 몰라. 생각해본 적 없어.”

뭐, 바퀴벌레였던 본인이 모르겠다는데 결론이 나오지 않을 얘기는 그만 하자.

“…저기, 하나 물어봐도 될까? 아까부터 뭐가 마음에 들지 않길래 날 노려보고 있는 거야?”

“전부. 처음부터 날 보는 눈이 마음에 안 들어.”

음…그건 미묘하게 상처받는 말이다. 첫인상부터 기분 나쁜 녀석으로 각인됐다는 거잖아? 물론 내게 잘못한 부분이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뭐,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래도 좋아. 그럼 그냥 바퀴라고 불러도 될까?”

“그건 싫어. 왠지 모르게 기분 나빠.”

바퀴벌레에 대한 내 인상이 단어에 녹아들었는지 녀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더듬이를 까딱거렸다.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거야? 물론 나라도 내 이름 대신에 인간이라고만 불린다면 썩 좋은 기분이 들진 않았을 거다.

“그게 싫다면 넌 어떻게 불리고 싶은 건데?”

“…이름, 지어주든가.”

그건 또 반응하기 난처한 대답이구나. 하지만 본인이 그걸 원한다면 지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자, 어디 보자…….

“음…제시카 어때? 좋지, 제시카?”

문득 어느 가수 그룹의 멤버 중 한 명이 떠올랐다. 내 관심사가 아니기에 그룹 명칭까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 예명의 주인이 예쁜 사람이었다는 기억만큼은 확실히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겨난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누가 들어도 절로 예쁘다는 인상이 드는 이름이니까 이 녀석도 분명 좋아할─

“뭔가 흔해 보이는 이름이라 싫어.”

─것 같았는데 말이지.

“…….”

아, 거절당할 줄 몰랐기에 순간적으로 멍때리고 말았다. 대체 무엇을 근거로 흔해 보인다는 판단을 내린 걸까?

“그럼, 음…으음…안젤리나는 어때?”

“…네 이름은 뭐야?”

어라? 내 이름은 왜? 그러고 보니 아직 내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었나?

이름이 없는 녀석이야 어쨌든 이름이 있으면서도 예절 운운하며 통성명조차 하지 않다니.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구나.

“내 이름은 래문. 성은 신이야. 신 래문, 이게 내 이름이지.”

신 래문. 성과는 되도록 이어서 불리고 싶지 않은 이름이다.

태명으로 끝내야 했을 것을 어찌 하여 태어난 뒤에도 이름으로 붙여버리신 건지, 게다가 왜 하필 신 씨 성과 궁합이 좋은 과일인 ‘레몬’이었던 건지 난 아직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진짜 왜? 태명을 레몬으로 지은 이유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않아?

“나도 그런 이름으로 지어주면 안 돼?”

“과일? 네게? 아아, 그럼 수박이나 포도 같은 게 좋다는 거야?”

“……!”

왜, 바나나도 있고 토마토도 있고…갑자기 흥이 나서 놀리려다가 더듬이가 곧추세워지는 모습을 보고 그만뒀다. 점점 표정이 표독해지는 걸 보니 인내심에 한계가 오는 모양이다.

이처럼 이름 정하기가 어려울 땐…종족 명칭을 살짝 비틀어서 지어주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는데? 이를테면 바퀴벌레이니……음…….

영어로 해보면 어떻지? Cockroach니까 칵로우치라 하면…….

“…와, 너 정말 이름 짓기 어렵네.”

“…….”

그렇다고 영희나 수영이나 그런 흔한 이름을 붙여주기엔 뭐랄까, 내면에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아까 제시카라는 이름을 제시했을 때 흔해 보여서 싫다고 말한 녀석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개성 있으면서도 녀석에게 딱 맞는 여성스러운 이름…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이기에 바로 떠오를 리가 없다.

“…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방법부터 같이 찾아볼까?”

“…….”

지그시 날 쳐다보는 녀석.

미안해. 하지만, 정말 생각나는 이름이 없는걸. 내게 작명의 재능이 없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평범한 이름을 대면 또 거부할 거 아냐?

“솔직히 말해줘. 너, 그냥 내가 이렇게 있는 자체가 싫은 거지?”

“어? 아니, 그…싫은 건…아닌데……. 음…….”

확답하지 못했다. 괜찮다고 좋다고 답해주기엔 실제 형편이 안 되고, 싫다고 한다면 마음의 상처로 남을 것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말끝을 흐리자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그러더니 기지개를 쭉 켜고는─

“아아!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건 이쪽에서 하고 싶은 말이거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빼앗겨버렸다!

“대체 내게 뭘 한 거야? 왜 내가 인간 된 거야? 돌려놓을 방법 있는 거지? 그렇지?”

애원하다시피 물어보는 녀석. 하지만, 그걸 알았다면 진작 돌려놓았겠지. 고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뮤으……!”

결국, 눈물을 머금고 마는 녀석. 그렁그렁 크게 고인 눈물은 이윽고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 방울 두 방울, 똑똑 소리를 내며 바닥을 적신다.

…사람 마음 약해지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 흐르는 여자아이의 눈물이라는 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무심코 사과하고 싶어지는 묘한 파괴력이 있다.

“저기 말이야, 울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그러니까…….”
“…….”

훌쩍거리며 날 올려다본다. 나는 다음 말을 이어나가려다, 말문이 막혀 그만두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정적이 둘 사이에 찾아들었다.

안 되겠다. 계속 이런 식으로 거리감을 느끼며 대화가 진행되어서는 진전이 없다. 최소한의 라포를 형성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이름의 무게는 크다. 개개인의 존재를 식별하기 위한 도구이자, 본인의 자아를 확립하는 매개로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입신양명이란 말이 왜 있고 명성을 널리 떨친다는 표현은 왜 있겠는가?

“일단 뚝 그쳐보겠어?”

내 상냥한 말씨에서 무엇을 느낀 걸까, 녀석은 별말 없이 천천히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다. 옳지, 옳지. 착하다, 바퀴. 아니, 너.

“…좋아. 우선, 나는 네게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오해하지 마. 난 아까도 굉장히 진지한 마음으로 네 이름을 지어주려 했던 거니까.”

과일 이름으로 지으려 했던 건 아무래도 농담이었지만 그건 제쳐두자.

“네 이름을 직접 지어볼 생각은 없는 거지?”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마마마의 말씀으로는 내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꽤나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내심 믿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설령 그 결과가 태명 재사용이라든가, 과일명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든가 하는 점을 뺀다면 말이다.

“내 이름…난 이름 짓는 방법 모르고, 생각도 안 나.”

하긴, 이름이 필요없던 존재에게 작명이란 난제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시선으로는 일견 간단해 보이는 행위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명명이라 생각하니 그 무게감이 남다르구나.

온라인 상에서 사용하는 별명은 가볍게 지어왔기에,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종과득과요 종두득두라고 했다. 이 악몽 같은 상황의 씨앗을 뿌린 건 나요, 거두는 것도 내가 되어야 한다.

“정해줘, 지금, 이 자리에서. 날 귀찮아하지 말아줘. 지금 인간인 나를 만든 건 너야, 래문.”

“…….”

“책임의식을 가져줘.”

책임의식이라니, 어려운 말도 쓸 줄 아는구나. 하지만 기절했다 깨어난 내 입장에서는 네가 멋대로 인간으로 변한 거라고 말하고 싶다.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이런 비현실, 아직까지도 믿기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제발 그렇게 애처롭게 날 쳐다보지 말아줘.

바퀴벌레면서, 그런 수준 높은 대화를 하려 들면 나로서는 대체 어떤 식으로 널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머리를 푹 수그리는 녀석.

더듬이도 따라서 축 처졌다.

“…날 버리지 말아줘.”

─뭐?

“…….”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어버린 녀석.

“…….”

“…….”

나 역시 할 말이 없다. 이 상황에 나온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름을 절실히 바라는 그 마음만큼은 확실히 이해했다.

그 외로움이 느껴졌다.

“바퀴벌레, 레벌퀴바…”

“……?”

갑작스럽게 시작된 아나그램에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살짝 올려다보는 녀석. 그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이 고여있다. 그 감정이 얼마나 진실된 건지는 저 눈물만 봐도 더 말할 게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름을 지어주고자 머리를 굴려보는 것이다. 흔하지 않은 이름으로, 녀석의 정체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게.

레벌퀴바…레퀴…레퀴…….

“레키는 어때?”

“이상해, 뭔가.”

당연히 이상하겠지. 한국어도 아니고, 심지어는 해외에서도 흔치 않은 이름일 거다. 게다가 레키라는 이름은 뭐랄까, 남성스러운 이름 아닌가?

“레키, 레키, 레키…….”

…키레.

…어? 키레, 키레, 키레….

“키레.”

“……?”

…뭐지? 이 느낌은 뭐지? 무언가, 내 가슴에 콕 박혀드는 발음인데.

“키레라는 이름은 어때?”

“키…레?”

일본인 이름 같은 느낌은 있지만 여성스럽고, 바퀴벌레라는 정체성에서 따오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마음에 든다. 덧붙여 발음하기도 편하고, 내가 아는 한 그리 흔한 이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키…레. 키레…….”

몇 번씩 곱씹어 말해보는 녀석. 그러더니 머지 않아 고개를 휙 들며, 아직 눈물이 살짝 맺혀있는 눈꼬리에 활짝 밝은 미소가 그려지더니─

“좋아!”

─라고, 말했다.

세라 다음으로 보게 된 밝고 숨김없는, 어여쁜 미소.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그 이름, 자신의 이름을 불러본다. 키레, 키레, 키레…라며.

“헤헤….”

“…….”

그게 그렇게나 좋을까? 옷깃을 매만지며 아직도 그 이름을 곱씹는다. 본인의 마음에 든 듯하니 다행이다. 작명 센스, 없진 않았던 듯하여 다행이다, 응.

“그러니까…키레? 어…다시 바퀴벌레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잘 부탁해.”

“…아, 응.”

하아. 정말이지…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키레라……. 남들에게 저 이름을 소개시켜주면 한국 사람이 맞는지부터 물어볼 거다. 순 우리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며, 그나마 일본어에 가장 가까운 이름이니까.

이처럼 이름도 지어줬겠다, 마음도 어느 정도 열린 듯하고, 내가 무언가 부탁하면 귀를 기울여줄 정도의 친밀감은 쌓이지 않았을까?

“키레, 거기 옷장에 보면 팬티가…아니, 아니다.”

“응?”

여자애에게 내 팬티를 입히는 모습을 떠올렸더니 범죄의 냄새밖에 나지 않는다. 더러운 것들은 강력한 물살과 세제의 화학작용으로 떨어져 나갔겠지만, 그래도 내 생식기가 닿았던 면에 녀석의, 키레의 생식기도 닿는다는 것 아닌가!

별 이상한 걱정을 다 한다며 손가락질 해도 달게 받겠다. 그치만 성욕 왕성한 청소년기에 그 정도 상상력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근데 그렇다고 해서 속옷을 입히지 않는다면 옷 아래로 힐끔힐끔 보이니까 눈을 둘 곳이 없어 문제이다. 아니, 일단 내 옷을 입혀놓기는 했지만, 그것도 그거대로 문제고…정말이지 문제투성이네!

일단 옷장에서 바지만이라도 꺼내어 입혀야겠다.

…하지만 그 전에!

“키레,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뮤으?”

“만약 누가 온다면 저 옷장에…….”

“옷장에, 뭐?”

“……아냐, 미안. 내가 생각을 잘못한 거 같아.”

가끔 만화나 영화, 심지어는 드라마를 보더라도 한 번쯤은 나오는 장면이 있다. 애인이나 부인, 아무쪼록 친밀한 여성이 남성에게 다가와 다른 여자와 만나고 왔는지를 맞추는 장면인데…그들의 향수 사용 유무와는 관계 없이 만남이 있었음을 맞추곤 했다.

─페로몬이다. 이 단어가 올바르게 쓰였는지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런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를, 암컷이 수컷을, 혹은 남자가 여자를,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는 데에 사용하는, 이성을 꾀는 물질.

벌써 이 방에는 녀석의 체취랄까, 나의 정신을 가볍게 흔들어놓기엔 충분한 향이 난다. 익숙해지면 잊어버리는 게 당연한 메커니즘의 후각신경은 무엇이 좋다고 제 일을 안 하는 건지 모르겠네. 묘하게 계속 맡고 싶어지는 좋은 냄새지만…….

아무튼, 어마마마께서 내 방에 들어오신다면 이 냄새를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나조차도 내 방에서 날 리 없는 이취에 당혹스러운데, 하물며 감각이 예민하신 어마마마라면 두 말 할 것도 없다. 옷장에 숨어있는다 한들 금세 발각되겠지.

“키레. 어마마마가 오시기 전에 잠시 밖에 숨어있는 게─”

쾅, 쾅!

“래문, 네 에미 왔다. 잠깐 문 좀 열어봐라.”

맙소사!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쾅, 쾅!

“래문~.”

“네……!”

시간을 끌어야 한다. 진짜 옷장 안에라도 키레를 숨겨야 한다!

쾅, 쾅!

“래문~?”

“좀 기다려주셔요!! 빨개벗고 있으니까!!”

이걸 어쩌지? 어떻게,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어마마마께서 돌아오시다니!

이거 참 환장할 노릇이네. 꼭 어마마마와는 이런 좋지 못한 순간이 생긴다니까! 아까 아침에 실수로 틀었던 그 녹음 파일도 그렇고 말이야!

…생각난 김에 그거, 다른 폴더에 숨겨놔야겠다. 비밀번호도 바꿔놓고.

“어라, 래문이가 오늘따라 좀 늦는구나?”

“이제 바지 입고 있으니까 좀 기다려주세요!”

“누구…읍!”

“쉿! 조용, 조용…!”

급하게 키레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는 조용히 시켰다. 이처럼 초조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대체 무슨 생각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는 거야!

“읍! 으읍!”

“너, 어마마마에게 걸리면 집밖에 버려질걸?”

“……!!”

됐다. 이제 녀석은 조용해졌고, 다음으로는 얼른 옷장 안에 숨겨야…….

“음, 래문? 너무 오래 걸리는구나. 내가 없는 사이에 여자아이라도 데려왔니?”

아니요, 정확히 하자면 인간 여자아이로 변한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여자아이가 말하지 못하게 입을 막고 있으며─”

“……!”

앗! 시작됐다! 어마마마의 말도 안 되는 정확도 100%의 악마의 눈치!!

“입고 있는 옷이라곤 상의 한 벌이라든가─”

“……!!”

“협소한 공간에 숨길 곳이라고는 장롱밖에 없고─”

“………!!!”

“결국 무엇인가 들키기 싫다, 이거지?”

이야, 정말 금쪽같은 능력이십니다, 그거. 매번 이런 상황에서만 능력이 발휘된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길 따름입니다.

똑, 똑똑.

“자, 문을 두드렸는데 이젠 래문의 답이 돌아오질 않는구나? 어쩔 수 없네. 문을─똥~하는 소리가 들렸으니─열 수밖에!”

말하면서 잠금을 풀었잖아요! 웃기지 마세요!! 저 사춘기 때 제 방에 마음대로 들어오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지금 열면 룰 위반이야!!!!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키레를 당장에 숨길 방법은? 대체 무엇이 있지? 장롱? 바로 들킬 텐데? 아, 그럼 나에겐 한 가지 방법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래. 맞아. 키레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돼. 그렇다면 조건은 대체 무엇이지? 그 조건? 내 발에 닿는 것??

그렇다면 내 발의 어느 부위? 아까 녀석을 제압했을 때 발바닥에 닿았던 것 같은데 바퀴벌레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렇다면 남은 부위는? 발뒤꿈치로 키레를 치면 되는 건가?

한번 해볼 만한 가치는 있어. 이게 잘못되면 상당한 욕을 얻어먹겠지만……!

─가장 운신이 편한 오른 발뒤꿈치로 키레의 발을 세게 짓밟았다!

“뮷─!”

고통의 신음을 짧게 터트리는 키레.

미안하다. 만약 실패로 끝난다면 이에 대한 보상은 내 용돈을 다 털어서라도 만족할 만큼 해줄게! 가능하다면!!

제발…제발……!

이 간절한 마음과는 다르게 문이 활짝 열린다. 구두 약속이란 이처럼 깨지기 쉬운 것이다.

어마마마께서는 문을 열고 발부터 넣으시기 때문에 0.3초 정도의 짧은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시간이라더냐. 고작 0.3초로는 키레가 인간으로 돌아가기는커녕 내게 밟힌 발등을 붙들고 낑낑거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아─잘 있어라, 평범했던 삶이여. 아니, 이미 평범한 삶은 끝나있던가.

“……!!”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번쩍, 하는 효과음이 기대되는 하얀 빛은 무엇이지?!


예전 소설을 읽다 보니 “바퀴벌레로 변해야~”라고 써야 할 걸 “인간으로 변해야~”라며 여러 군데에서 잘못 작성했네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오류를 낸 건지 모르겠지만, 새로이 써내리는 마당에 굳이 예전 글을 수정할 필요는 없겠죠.

예전에 썼던 내용으로는 진중한 분위기를 내기엔 어색함이 들어서 대화 흐름의 앞뒤 문맥을 조정했습니다. 음~마음에 드느냐 하면 아직 애매한 감은 있는데, 생각보다는 술술 써진 것 같습니다. 4시간 걸렸다 생각하면 정말 술술 써졌는가에 대해선 고민해볼 여지가 있지만요.

이번 화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선 거의 수정한 내용이 없습니다. 크게 대수롭지 않은 설정 변경을 반영한 걸 제외하면 거의 그 자체입니다. 뭘, 다시 쓸 필요가 없다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뿐이니까요.

그나저나 키레…저희 집에서는 아직도 바퀴벌레를 키레라고 불러도 통용됩니다. 참…작품에 미련 가득한 애정이 담겨있는 이유가 조금은 보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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